엄마의 엄마를 보내며. by heiin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십대 후반, 집안의 어른 셋의 장례를 연달아 치렀던 그 때보다 고됐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외할머니와의 유대가 깊지 않았음에도, 마디마디 행간의 이야기들을 많이 알아서인지
이 죽음은 유난하다.

엄마는 발인하는 오늘, 유독 많이 울었다.
승화원 안을 떠나지 못하고 두 시간 가까이 온몸을 떨며 울었다.
모녀이니 당연하지, 그렇다.

딸로서 엄마를 보내는 심정이 어떨지 한참을 생각했다.
언젠가 돌아올 나의 차례에 나는 이런 모습일지, 어떤 모습일지.
불꽃사이로 들어가는 할머니의 관을 바라보면서 어떤 마음일지.

엄마는 엄마와 그닥 아름다운 사이는 아니었다.
엄마의 엄마는 여느 엄마와 같이 아들, 특히나 장남을 위해 공전하는 달과 같이 살았고
딸들은 위성의 축에도 끼지 못했다.
엄마도 삶의 삼분의 일 정도는 남동생들을 위해 살았고, 또 그 나머지는 자식들을 위해 살았다.
그게 당연한 사람이었다. 보고 자란게 그것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자신이 사랑받아야한다고 생각지 못했다.
자신에게 그것들이 부족했고 섭섭했음을 아주 한참이 지나서야 조금 깨달았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에게 사랑받고 살지못했음을 불과 얼마전에 토로했고
그때의 엄마는 너무 쇠약해져서 싸우거나 원망하기에는 많이 늦었다.
상처를 채 만지기도 전에, 엄마의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오늘, 엄마는 유독 많이 울었다. 하지만 입밖으로 내놓은 말은 많지 않았다.
그저 온몸을 떨며 숨을 참으며 울었다.
엄마를 한참 지켜보며 그건 비단, 엄마의 엄마때문에 우는 것만은 아니라는걸 깨달았다.
이 갈등을 풀지 못하고, 자신의 억울함을 채 표현하기 전에 세상을 떠난 엄마에 대한 원망과
설움을 지고 혼자 남아버린 불쌍한 자신을 위해 울고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누구에게도 말해본적 없는 설움을 남겨버린 장본인이 떠나버렸으니, 이젠 그 어디에도 말할 수 없게됐다.
많은 딸들이 엄마를 보내며 우는건 망자만을 위한 눈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고보니, 그런 엄마가 가여워 눈물이 났다. 나도 먼 훗날에 그런 마음으로 엄마를 보내게 될까.
아니, 난 그런 마음으로 엄마를 보내고싶지 않아. 그리고 엄마도 이런식으로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이 자리에서 엄마의 설움도 맘껏 울고 다 태워보냈으면 좋겠어. 그럴수만 있다면.


할머니가 급격히 쇠약해진 작년부터 이 집안 모녀들의 세세한 겹들을 들춰보았다.
큰 딸과 엄마, 작은 딸과 엄마, 큰 딸과 작은 딸. 손가락에 끼인 가시마냥 겹겹이 상처가 들어차지 않은데가 없었다.
내가 태어나기 한참전부터 조그만 가시들이 들어앉아 곪고, 썩고, 멍들고, 덮고 아물고 반복이었다.
나를 예뻐하던 외할머니는 누구였을까. 손녀에게 눈물을 흘리며 딸을 원망하는 하소연을 하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 겹겹 상처를 박아넣고 또한 상처를 받은 엄마는 누구의 딸이었으며, 누구의 엄마였을까.
그리고 그 상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엄마의 엄마는 또다른 딸을 남겨놓고 떠났다.
이모는 지난달 췌장암 진단을 받고 치료에 들어가 장례도 참석하지 못했다.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이렇게 속히 떠나신걸까.


딸의 딸이, 엄마의 엄마에게 아직 묻지 못한게 많다. 들어야할게 아직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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